아베노 세이메이(安倍晴明)의 수수께끼 - 요마의 계보 (제1장 - 2)

아래 내용은 동명의 서적을 번역한 것이며 내용에 관해서는 제 역사관과 일체의 연관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흥미위주의 불쏘시개 수준인지라 역사관은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융통성 발휘를 부탁드립니다.




아베 가문(安倍家)의 침체기


 헌데 이 ‘존비문맥(尊卑文脈)’을 보면 ‘아베 가문, 점점 몰락해가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베노 미우시의 우대신 이후 점점 관직의 직급이 내려가, 세이메이의 조부에 이르러서는 아와지노가미(淡路守 : 담로수)라는 지방직을 지냈다. 그렇다곤 하나 도지사급의 지위는 되었으니 집안에서 보면 훌륭하긴 하지만, 중앙의 2인자였던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아쉬움이 남는다.

 세이메이의 아버지 아베노 마스키(安倍益材)의 ‘대선대부(大膳大夫)’라는 직책은 조정의 ‘부엌’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실제 업무는 조정내의 식사 관리, 연회 등 특별한 자리에서의 음식 관리, 여러 지방에서 거둬들인 특산품의 관리 등이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이며 식품에 대한 사정이 엄격했던 당시였기에 식품의 관리 역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는 관계없는 위치이다. 조정내에서 정적(政敵)도 없었을 것이고 파벌 싸움에 말려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식료품 저장고의 쌀섬이 떨어졌는지 조사하고, 저녁 메뉴를 정하고, 다음 달 연회석 참가자 수를 조사하고, 주류를 업자에게 발주하는 등의 하루하루를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아베 가문’으로써 높이 평가 받는 까닭은 아베노 미우시가 우대신이었던 과거의 영광에 따른 점이 크게 작용하여, 보험과도 같은 그 점으로 기인하여 자손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직책이 부여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업적도 점점 흐려졌기에, 만약 세이메이가 평범한 사내였다면 더욱 지위가 낮은 관직밖에 얻지 못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은 1)후자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를 필두로 한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전성기였다. 요직의 대부분은 후지와라 일족이 독점하고 있었고 일족과 접점이 없는 집안 사람이 출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설프게 두각을 드러내는 사내나, 야심만만하게 출세를 노리는 이가 있으면 후지와라 일족은 단순히 ‘방해’라는 이유를 들어 살해했을 법한 시대였다.
 
 ‘식사 당번’이라고는하나 천황과 접점이 있는 직책에 있던 것만 해도 마스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 (966~1028)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정치가. 그의 딸 4명이 천황과 혼인하였고, 천황 3명의 외조부로 당시 일본의 최고실권자였다.
*역주 : 원서에 아베씨 인물들은 모두 그 성인 '아베노'가 빠져있습니다. 세이메이를 제외하곤 알아보기 힘들것 같아 임의로 첨가하였습니다.
  


-계속


덧글

  • 이탈리아 종마 2012/07/17 16:18 # 답글

    아베노 마스키의 대선대부 직책을 보니 왠지 모르게 이윤(伊尹)이라는 인물이 떠오르네요.
    이윤은 고대 중국 상(商)나라-흔히 은나라로 잘못 인식하는 왕조-의 재상인데, 본래 '부엌'을 맡은 요리사 출신으로서 요리를 통해 왕과 독대할 기회를 잡고는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고 하네요.
  • 조훈 2012/07/17 16:25 #

    아, 저도 재상 이윤을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상, 은 모두로 불리우는 줄 알았는데 은나라는 잘못된 것이었군요.
  • 이탈리아 종마 2012/07/17 16:28 #

    은이라는 명칭이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종종 은 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정식 명칭인 것마냥 굳어진 것은 새로 건국한 주나라에서 상나라 주민들을 싸잡아 '은'이라고 낮게 호칭하면서부터입니다.

    말하자면 은나라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정확히는 상나라라고 불러야 하는 모양입니다.
  • 잠꾸러기 2012/07/17 21:24 #

    상나라와 은나라의 관계
    하나 배웠네요.
    그부분이 좀 헷갈렸어요.
  • 기린 2012/07/18 00:00 # 답글

    언뜻 보면 조권... 닮았네요^^;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저 시대(?)의 인물들 이름을 보면 성 다음에 の가 붙고 이후에는 그런 게 없던데

    왜 그런 건지 매번 궁금하더군요.
  • 조훈 2012/07/18 00:09 #

    읽은분이나 할 수 있는 질문이라 기쁩니다.

    나라시대부터 고대 일본의 성은 하나의 단체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같은 성을 가졌다하여 핏줄이 아닌 사람이 많았죠.

    그렇기 때문에 성과 이름 사이에 동격조사 '노'가 붙었는데요. 이를테면 후지와라, 미나모토, 타이라 등은 굉장히 많았죠.

    무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해당 단체를 일체 척결함에따라 그런 관행이 사라졌습니다.
  • 조훈 2012/07/18 00:33 #

  • 기린 2012/07/18 00:47 #

    말이 길어지니 더 이해하기 어렵다능^^; 아무튼 글을 읽다 보니 고대(중세인가) 일본에서는

    정통성이란 것에 상당히 집착한 듯이 느껴지는군요.
  • 조훈 2012/07/18 00:47 #

    이거 왜 이래, 나 정씨 가문 n대 독자야!

    이런 느낌이랄까? 조금 다른가;
  • 기린 2012/07/18 00:54 #

    거기에서 한 술 더 떠서, 온갖 직책(실상은 이름뿐인 명예직)을 박아넣은 명함을

    건네며 살짝 허리를 뒤로 젖히는 영감님... 나 이런 사람이야~

  • 라디오 2012/07/18 09:35 # 답글

    존비문맥(尊卑文脈)은 일종의 계보를 말하는건데..여기에 나오네요.
    ㅎㅎㅎ.. 보고 싶은 계보중에 하나입니다.
  • 라디오 2012/07/18 09:38 #

    膳夫은 궁중에 음식을 조달해 주는 직책을 말하는게 맞죠.
    上代에서는 六雁命이 그 역할을 하였죠.
  • 조훈 2012/07/18 12:08 #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니 반갑네요!
  • 조훈 2012/07/24 07:30 #

    혹시 이 덧글을 보실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보는 책에 '(존비분맥)尊卑分脈'이라고 등장하는데요, 이건 고지엔 사전에도 등장하고 국내 웹에서도 검색이 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데 '존비문맥'은 그렇지가 않네요. 혹 책의 오자는 아닌가 하여 여쭤봅니다. 둘의 차이를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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