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미위주의 불쏘시개 수준인지라 역사관은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융통성 발휘를 부탁드립니다.
5대째 야스치카(泰親)의 전설
요시히라와 요시마사 형제는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지만 요시히라에게는 도키마사(時親), 히라카즈(平算), 구니토키(国時)(출가 후에 법명인 엔히쓰(円弼)로 개명), 아키치카(章親), 노리치카(奉親), 이 다섯 명의 자식들이 있었는데 출가한 구니토키를 제외하고 전원이 음양사가 되었다. 이 네 명이 제법 우수했던지, 아버지와 스승의 은혜로 지위를 얻은 아버지와는 달리 실력으로 관내에서의 지위를 견고하게 다졌다. 재능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라 하겠다. 그 격세유전은 다음 세대에도 유효했는지, 세이메이의 5대손인 아베노 야스치카(安倍泰親)는 세이메이를 잇는 전설의 음양사가 되었다. 야스치카는 천문박사와 음양두를 함께 지내어 세간에서는 1)‘사스노미코(指すの神子)’라 부를 정도로 그는 점복의 명인이었다.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에는 그 실력을 전하는 일화가 남아있다. 어느 날 갑자기 궁정 내에 대량의 족제비가 들어왔다. 2)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에게 유폐된 3)고시라카와(後白河) 법황은 무슨 좋지 못한 징조가 아닌지, 자신이 마침내 유배에 처해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나서 야스치카를 불러 점을 보게 하였다. 야스치가가 이끌어낸 결론은 ‘3일 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그 후에는 한탄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였다. 이래서야 고시라카와 법황은 기뻐해야 좋을지 걱정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어떤 의미를 가진 것처럼 내뱉는 언행은 세이메이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았던 것일까.
야스치카의 예언대로 며칠 후에 법황의 유폐가 풀려 거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후 법황의 아들이 기요모리를 향한 모반을 획책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전사(戰死)하고 말았다. 이것이 ‘한탄스러운 일’이다. 야스치카는 한탄스러운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일까? 만약 ‘친왕(親王)의 모반이 드러나 죽임 당한다’까지 알고 있었다면, 법황에게 귀띔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세이메이가 천황과 후지와라 일문, 이 양쪽에 등을 지지 않았던 것처럼 야스치카도 다이라(平) 가문에 등을 질 수는 없었다. 모름지기 음양사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살아가야만 한다. 특정 세력에 가담하게 되면 본인들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게 되고 만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또한 세이메이가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자식이라면, 당연히 그 자손인 야스치카 역시 다이라 가문의 피를 잇는 사내이다. 어쩌면 기요모리를 거역하는 친왕을 훼방꾼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야스치카는 그런 다이라 가문의 쇠퇴도 코앞에서 지켜보는 운명을 맞이했다. 4)겐페이 성쇠기(源平盛衰記)에 따르면, 어느 날 기요모리가 아끼던 말의 꼬리에 쥐가 집을 트고 새끼까지 낳은 것이 발견되었다. 말 꼬리에 쥐가 집을 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천하에 기요모리의 애마라면 틀림없이 전담인이 따라붙어 밤낮으로 금이야 옥이야 돌보았으리라. 쥐가 집을 쳤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집을 틀었으니 참으로 놀랍다. 이에 기요모리도 깜짝 놀라 즉시 야스치카를 소환했다. 야스치카는 긴말 않고 “불길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아무쪼록 조심하셔야 합니다”라는 말만 하고 그 말을 데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제자 중 한 명에게 ‘머잖아 다이라 일문은 멸한다. 미나모토 일족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고 전했다고 한다.
음양도에서 십이지로 볼 때 쥐(子)는 북방을, 말(午)은 남방을 의미한다. 남방은 상단에 위치하므로 말 위에 쥐가 집을 트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허나 쥐는 집을 지었고 새끼까지 낳았다. 이를 시대상에 적용하면 남방에 있는 다이라 가문이 머지않아 북방 세력에 의해 위를 빼앗긴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방에서 오는 미나모토 일문에게 천하를 빼앗기게 되는 전조였던 것이다. 야스치카의 예언대로 얼마 안 되어 다이라 가문은 스러지고 말았다.
1) 마치 신처럼 점이 잘 들어맞는 음양사나 점술가를 일컬음.
2) (1118~1181) 헤이안 말기의 무장, 정치가. 귀족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당시 천대받던 무사로서 눈부신 공적을 이룬다. 호겐(保元)의 난 때 고시라카와 천황의 신뢰를 얻고 헤이지의 헤이지(平治)의 난때 라이벌인 무사 가문인 미나모토(源) 가문에게 승리를 거두어, 무사로서는 최초로 정일품에 해당하는 태정대신(太政大臣)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권력이 점점 독재의 양상을 띠게 되자 여러 세력이 반박하고 결정적으로 미나모토 가문이 부활하여 다이라 가문은 급격히 쇠퇴하고, 일문이 멸족 직전에 사망한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에 의해 가마쿠라(鎌倉) 막부가 열리고 700년간 무사정권이 시작된다. 현재 NHK에서 인기리에(?)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3) (1127~1192, 재위 1155~1158) 일본의 77대 천황. 도바(鳥羽) 천황의 정실인 후지와라노 쇼시(藤原璋子)의 넷째 소생으로 고노에(近衛) 천황이 17세로 사망하자 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호겐(保元)의 난 이후 다이라 가문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 이로써 니죠 천황에게 양위 후 상황이 되어 5대 34년에 걸쳐 천황의 아버지인 상황이 정치를 행하는 원정(院政)을 누린다. 기성 귀족 세력인 후지와라 세력을 약화시키고 무사 세력을 강화하여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권력을 잡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이라 가문의 권세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키나 패하여 유폐당한다. 무사세력과 공생한 탓인지 훗날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질 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
4) 48권으로 이루어진 군기 문학. 작자 미상에 정확한 성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가마쿠라 시대부터 남북조 시대까지 여러 설이 존재한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를 중심으로 미나모토(源) 가문과 다이라(平) 두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다.
*이미지 : 드라마 '다이라노 기요모리' 포스터. 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이 주인공 기요모리.
-계속
덧글
사서에 종종 언급되는 격세유전의 사례들...
일반인들은 앞날을 모르기에 시세에 편승하려 드는 것일텐데...
미래가 예측되면서도 행동을 안하고 가운데를 지키는것을 보면 음양사의 자격으로 자기수양이 있었던 셈이네요. 중용ㅋㅋ
매번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이 마지막입니다.
일하는 틈틈히 취미로 깨작깨작 하던 것이 책 한 권을 번역했네요.
근데 이 자료를 출간하실 생각은 없나요?
아마 저작권 협상? 을 해야 겠죠??
일어책은 사서 볼 수준이 안되고...ㅋ
그래서 번역을 한 이유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의뢰해서 할 수도 있는데, 저자에게 판권을 새로 사들여야 하고
아니라 생각하지만 행여나 복잡해질 수도 있을것 같아요. 제가 저자는 아니니 엄연히 무단이 되는 셈이라;
예전에 학교에서 하던 것처럼 제본을 떠서 책처럼 만들어 개인 소장하거나 선물할 생각만 막연히 하고 있습니다.
글솜씨가 부족해서 팀이 아닌 혼자서 내기는 뭐팔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