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 - 지붕위의 사왕(屋根の上のサワン)

 필시 변덕스런 사냥꾼 내지는 장난기 넘치는 소총수가 저격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늪지 물가에서 괴로워하는 한 마리 기러기를 발견했습니다. 기러기의 왼쪽 날개는 자신의 피로 적셔져 있었고 멀쩡한 오른편 날개만으로 헛되이 퍼덕이며, 수초가 빽빽한 습지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상처 입은 기러기에게 다가가 양 손으로 안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마리 철새의 깃털과 내 양손에 전해진 체온, 그리고 의외로 묵직한 무게감은 그 당시 우울하던 내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새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자 결심하여 그 아이를 양손에 안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방 덧문을 걸어 잠그고 다섯 개 전등불 아래서 이 아이의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허나 기러기라는 새는 어슴푸레한 곳에서도 눈이 잘 보이는지 세면대의 석탄산(페놀)과 요오드포름 병을 발길질하며 수술하려는 나를 방해했습니다. 하여 나는 다소 거칠긴 하지만 녀석의 두 다리를 실로 묶고 날뛰려하는 우측 날개를 몸통에 내리누른 뒤, 가늘고 긴 녀석의 목을 내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선,

“가만히 있어!”

하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내 친절을 극단적으로 오해하여 치료가 끝날 때까지 내 가랑이 사이에서는, 늦은 밤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치료가 끝나고서도 나는 상처의 출혈이 멎을 때까지 녀석을 묶어둔 채로 두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녀석은 온 방안을 날뛰어 상처에 이물질이 들어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치료 결과가 염려되었습니다. 수술기구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연필을 깎을 때 사용하는 작은 칼로 하여금 녀석의 날개에서 네 발의 산탄을 파내고, 그 상처를 석탄산으로 씻어내어 요오드포름을 뿌려두었습니다. 여섯 발의 산탄이 날갯죽지 뒤쪽에서 파고들어, 그중 두 발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관통했습니다. 아마 이 새를 쏜 이는 기러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던 모습을 보고 방아쇠를 당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탄환에 맞은 기러기는 하늘에서 비스듬히 떨어져서 상처가 나을 때까지 수초 속에서 쉴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침울한 기분으로 늪지 물가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묶여진 기러기를 방 안에 내버려두고, 옆방에서 석탄산 냄새가 나는 손을 씻고 기러기에게 줄 먹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몹시 지쳐있음을 깨달은 나는 화로에 기대어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대개 이러한 수면은 의외로 긴 잠이 되기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늦은 밤이 되지 않고서는 눈이 떠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요란한 기러기 우는 소리에 눈을 뜬 것입니다. 옆방에서, 다친 기러기는 새된 한편 짤막하게 세 번 정도 울었습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장지문 틈새로 살펴보니, 기러기는 다리와 날개를 묶인 채 다섯 개의 전등 쪽으로 다시 한 번 울어보려는 듯이 목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다친 철새는 전등 불빛을 늦은 밤 달과 착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러기의 상처가 완전히 낫자, 나는 이 새의 두 날개의 칼깃만을 짧게 잘라서 정원에 방목하기로 하였습니다. 녀석은 아주 사람을 잘 따르는 새인 모양인지, 내가 외출할 때에는 문 근처까지 내 뒤를 쫓아오거나 늦은 밤이 되면 집 주변을 걸어 다니는 모습이 흡사 애견이 그 주인을 따르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나는 이 새에게 ‘사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들이나 늪지를 산책할 때 데리고 나가곤 했습니다.


 “사왕! 사왕!”

사왕은 졸음기를 띤 발걸음으로 내 뒤를 쫓아옵니다. 늪지는 이미 초여름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가에는 내 키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얇은 줄기의 생풀들이 우거져있고, 수면에는 많은 수의 널찍한 수초 잎과 순백색 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왕은 이 늪지가 맘에 든 모양입니다. 녀석은 물에 들어가 짧은 날개를 퍼덕이거나 꼬리를 흔드는 등, 이러한 멱 감기에 질리지 않는 이상 내가 아무리 불러도 물에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늘 나는 풀숲에 드러누워 나만의 생각에 빠지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과연 나는 사왕이 멱을 감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늪지에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우울한 사상들을 떨쳐내기 위해 산책에 나선 것입니다.

 사왕은 수면에서 노는 것뿐만 아니라 물속에 잠수하는 것 또한 즐겼습니다. 때로는 물속에 숨어있을 때마저 있었습니다. 허나 다행스레 늪지의 물은 깨끗했기에 나는 사왕이 물속에서 먹이를 잡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본래 기러기라는 새는 햇빛이나 태양열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내가 사왕을 방치해 둘 때에는 온종일 복도 아래 쭈그려 앉아 낮잠만 자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그래도 밤중에(나는 정원 쪽 여닫이문을 닫고 녀석이 도망치지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 두었지마는) 사왕은 울타리를 부수려 하거나 덧문을 뛰어 넘으려 하는 등 제법 혈기가 왕성해 보였습니다.

 이윽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된 어느 날의 일입니다. 그것은 세찬 늦가을 바람이 불고 지나간 늦은 밤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잠옷 위에 솜옷 한 장을 걸치고, 그날 오후에 빨고서 미처 말리지 못했던 버선을 말리고자 화로 숯불에 버선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누구든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혹은 팔짱을 끼고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하는 등의 시답잖은 생각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숯불에 쬐고 있는 버선에서 탄내가 나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 나는 사왕의 새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늦은 밤의 정적을 요란스러움으로 바꾸어, 필시 바깥에는 사왕의 신경을 건드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사왕! 큰 소리로 울지 마!”

하지만 사왕의 비명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창밖 나무숲 가지끝에는 아직 저마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어, 줄기를 건드리면 셀 수 없이 많은 이슬이 한꺼번에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활짝 갠 달밤이었습니다.


 나는 창을 넘어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나가보니 사왕은 우리 집 지붕 꼭대기에 서서 긴 목을 하늘로 높게 내밀고, 녀석 치고는 가능한 큰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녀석이 목을 내밀고 있는 방향에는, 늦은 밤에 뜨는 관례로써 일그러진 달이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달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밤하늘 높이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이 세 마리의 기러기와 사왕은 하늘 높은 곳과 지붕 위에서 서로 소리에 힘을 담아 번갈아 울고 있던 것입니다. 가령 사왕이 소리를 세 번 끊어 울면 세 마리 기러기 중 한 마리가 소리를 세 번 끊어 울며, 필시 그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짐작해 보건대 사왕은 세 마리 동료들을 향해,

“나를 함께 데려가 줘!”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사왕이 도망칠까 염려되어 녀석의 울음소리에 말을 끼워 넣어 참견했습니다.

“사왕! 지붕에서 내려와!”

사왕의 태도는 평소와 달라, 내 지시를 무시한 채 세 마리 기러기들에게 울며 매달릴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휘파람을 불어보기도, 두 손으로 손짓을 하기도 했지만 참지 못한 나머지 작대기로 정원수 가지를 치며 호통치고 말았습니다.

“사왕! 그렇게 높은데 올라가면 위험해! 빨리 내려와! 정말 안내려올래?”


 하지만 사왕은 세 마리 기러기 동료들의 모습과 울음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붕위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당시 사왕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필시 다음과 같은 장면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머나먼 외딴섬에 표류된 늙은 철학자가 10년 만에 가까스로 바다를 지나는 배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사람들은 지붕위 사왕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왕이 다시금 지붕마루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녀석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한 쪽 끈을 기둥에 묶어두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난폭한 처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에 대한 나의 애착을 배반하고 먼 곳으로 도망갈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녀석의 깃털을 더 이상 짧게 자르면 상처 입을 만큼 짧게 잘랐습니다. 녀석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다음날 사왕을 꾸짖을 따름이었습니다.

“사왕! 너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지? 그런 매정한 짓은 하지 말아 주렴.”

나는 사왕에게 사흘 걸려도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먹이를 주었습니다.

 나는 사왕이 지붕에 올랐을 때 매번 새된 소리로 우는 습관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달이 밝은 밤에 한해서, 그리고 늦은 밤에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 나는 책상에 앉아 팔꿈치를 괸 채로 혹은 잠자리에 누워 사왕의 울음소리에 호응하며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는 어지간히 주의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어렴풋한 기러기 소리였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늦은 밤 그 자체가 고독하기에 굴복하여 새어나오는 한숨과도 같아,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사왕은 늦은 밤의 한숨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날 밤은 사왕이 평소보다 더욱 새된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흡사 통곡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지붕위에 올랐을 때에 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밖에 나가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기도 하고, 녀석의 울음소리가 빨리 그치길 기도하기도 하고, 내일부터는 녀석의 날개를 자르지 않도록 하여 자유를 주어야겠다는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잠자리에 들고서도, 마치 무시무시한 폭풍우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 어린아이가 잘 때처럼 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쓰고 잠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사왕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사왕이 지붕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의 상상 속에서 나타난 사왕도 새된 소리로 울부짖으며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결심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사왕의 날개에 깃털이 빨리 자라는 약을 발라주자고. 새 깃털은 녀석의 바람대로 높은 하늘을 향해 비상시켜 줄 것입니다. 만약 내게 고풍스런 취미가 있었다면 녀석의 다리에 함석 조각으로 된 고리를 채워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조각에는 ‘사왕, 달 밝은 하늘 높이 즐겁게 날아가렴’이라고 작은 칼로 문자를 새겨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날 나는 사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왕, 이리 나와!”

 나는 당황했습니다. 복도 아래에도 지붕 위에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함석제 차양 위에는 한 가닥의 가슴털이, 분명히 사왕의 가슴털인 그것이 차양 이음매에 끼여져 아침 실바람을 맞으며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늪지에도 나가보았습니다.

 그곳에도 사왕의 기척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가에 자라난 키가 큰 풀의 줄기 끄트머리에는 이미 수상화서 씨를 맺고 있어, 내 어깨나 모자에 솜털 같은 씨앗들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사왕, 사왕 어디있니. 만약 있다면 나와다오! 제발 부탁이니 이리 나오렴!”

 물 밑바닥에는 시든 잎사귀들이 가라앉아 있고 사왕은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녀석은 동료들의 날개에 감싸여 자신의 계절 닿는 곳으로의 여행을 떠난 것이겠지요.


(본인 번역)


덧글

  • 잠꾸러기 2012/11/10 12:23 # 답글

    단편소설을 직접 번역한 건가요??

    사왕은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떠난거군요....
  • 조훈 2012/11/10 12:27 #

    제가 1학년때 한 것... 굉장히 유명한 쇼와시대 작가의 작품입니다.
  • 잠꾸러기 2012/11/10 12:30 #

    아 그렇군요.

    새된 소리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길래 검색해보니 우리말에도 있고 일어에도 있네요.

    오늘 처음 알게된 표현이었습니다.ㅎ
  • Rock Bogard 2012/11/10 15:44 # 답글

    사왕이라는 이름에는 어떠한 뜻이 있나요?
  • 조훈 2012/11/10 15:48 #

    아뇨; 전혀 없습니다. 저도 뭔가 있는줄 알았습니다.
    만약 있다면 다친 왼쪽 날개를 뜻하는 '左腕(사왕)'이 아닐지.

    동인지에 처음 실을 당시에 제목은 'あの秋の夜更(가을 늦은 밤)'이었다가 작가가 등단하고 가필하면서 지붕위의 사왕으로 바꼈습니다.
  • Rock Bogard 2012/11/10 16:14 #

    컹; 그렇군요. 당시 일본은 얼마나 문화적으로 풍족했으면 동인시장까지 있었는지;;
    그런데 이 소설은 마무리가 너무 허무하네요. 날아갈 수 있었던 원인을 알 수 없는 채로 끝나다니......
  • 조훈 2012/11/10 16:27 #

    근현대 문예사조에서 발매된 문예잡지 일체를 '동인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훈의 상록수에서 가져온 '상록수'라는 동인지도 있었고 많았어요...
    육영수 여사, 박근혜 후보가 재단이 되었던 잡지 '새벗'도 시작은 동인지였다가 잡지로 바뀌었고..

    시대적 배경이 되는 종전 상황과 작가의 가족과 친구들의 사망 등으로 비롯해서, 극도로 우울한 마인드를 가진 근대 소설가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기러기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고 일본 수험에서 단골로 출제되네요. 기러기 자체는 생각하기에 따라 중요하지 않을지도.
  • Rock Bogard 2012/11/10 16:35 #

    아마추어가 취미로 내는 작품을 동인지로 알고 있었기에...... 잘못 알고 있었네요;

  • MK 2012/11/12 09:30 # 삭제 답글

    간만에 다시 찾아보니 좋은 글이 또 올라와 있네요. 이부세 마스지는 산쇼우오만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도 정말 좋네요. 언제나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조훈 2012/11/12 09:52 #

    이부세 마스지는 우화소설로도 유명한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산쇼우오입니다. 이부세 마스지의 대표작이기도 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YU 2012/11/22 23:02 # 삭제 답글

    잘보고갑니다^^ 실례가 안되다면 이 책의 원서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 조훈 2012/11/22 23:13 #

    학회에서 선생님들께 선물받은거라 어디서 구하고 말고는 뭐라고 말씀드리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부세 마스지의 전집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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